"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최근 들어 이 말이 계속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당연히 사람들도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다른 사람들이 내가 생각하는 것에 당연히 동의해줄 것이라 생각했고,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당연하게도 내 곁에 계속 남아 있어줄 것이라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보니 하나의 기억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던 거 같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 두분 다 일을 하셨다.
두 분 다 각자의 삶을 꾸려가시면서 또 가정도 꾸려나가고 계셨던 것이다.
지금의 내 관점에서 보면 정말 대단해보인다. (물론 지금도 대단하시다...)
특히 어머니, 어머니는 당시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오직 능력만으로
그때 당시 여성이 받을 수 있던 연봉 중 상위의 연봉을 받으셨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나와 동생의 칭얼거림을 다 받아주셨고, 우리에게 최선을 다 해 주셨다.
다시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난 그때도 덜렁이였다.
준비물을 전날 밤에 챙겨놓고도 놓고가기 일쑤였다.
근데, 그날은 특히나 준비물을 놓고오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지점토로 자기가 만들고 싶은 물건들을 만들어내는 수업이었는데 하필이면 지점토를 놓고 왔고,
그 날 놓고 온 아이들이 또 많았던 상황이라 담임 선생님이 준비하신 지점토 역시 다 떨어져 버렸던 것이다.
그때 다짜고짜 공중전화기로 달려가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지점토 가져다 달라고
어머니는 한창 회사에 계실 때였다.
당연히 안된다고 말씀하셨다.
근데, 나는 계속 찡찡댔다. 지점토 안가져와서 수업도 못듣고 혼자서 아무 것도 못한다고
물론 어린아이의 칭얼거림이었지만, 어머니의 가슴은 얼마나 미어졌을까?
당신이 하고 계신 일 때문에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못챙겨주셨다는 걸 항상 미안하다고 말하셨던 분이었다.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을 정도인데...
결국 그때, 짝인 친구가 쓰고 남은 지점토로 그때 수업을 해결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친구가 여러개를 사왔어서 다행이었지...)
그 날 어머니는 늦게 들어오셨다. 문을 열고 자고 있는 나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던 걸 잠결에 보았던 게 아직도 선하다.
어쩌면 어렸던 나에게는 당연하게도 여겨졌던 것들...
내가 놓고 간 준비물을 갖다 달라고 했던 그런 기억들
내 걸음으로도 20분 걸리던 그 거리를 초여름의 뜨거운 빛을 맞아가며 가져다 주신 여러 물건들...
지금의 나는 부모님께 그런 부탁을 받으면, 일단 대답만 하고 제대로 도와드린 적은 없다.
부끄럽다...
부모님의 희생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부모님도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고 싶었을 것이고,
그러면서도 우리의 요구를 하나 하나 다 들어 주고 싶으셨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라도 부모님께 더 표현하려고 한다.
사랑한다고,
어머니가 도와달라고 했을 때 아무 토 달지 않고 바로 해드리고
아버지가 어디 같이 가자고 하시면 토 달지 않고 같이 가고
최근 들어 도움을 요청하는 횟수가 잦아지셨다.
나이가 드신거지
가슴이 아프다.
내 기억 속의 아버지 어머니는 단단했고, 강했다.
하지만 그 기억 속의 아버지 어머니는 우릴 위해 견디셨던 거였고, 사실 우리 몰래 울음을 터뜨리고 무너지기도 하셨다.
이제 그 기억속의 아버지 어머니를 내 마음에 새겨 놓고
내가 그 기억속의 아버지 어머니처럼 살아가려 한다.
부모님의 희생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나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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